강릉 김씨(江陵 金氏)
강릉 김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18만 명으로 관향은 강원도 강릉시입니다. 강릉 김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강릉 김씨(江陵 金氏) 역사
강릉 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으로 시중(侍中) 겸 병부령(兵部令)를 지냈다. 아버지는 각간(角干)을 지낸 김유정(金惟靖)이다. 족보상으로는 태종 무열왕의 셋째 아들인 김문왕(金文王)의 5세손이라고 한다.
785년(선덕여왕 6) 선덕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군신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경주의 알천 북쪽에 살던 곳에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알천을 건널 수가 없어 입궐을 못하게 되었고 화백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즉위를 포기하였다.
이에 원성왕이 즉위하니 그가 내물왕의 12대손 김경신이다. 그 후 원성왕은 그에게 왕위에 오를 것을 권유했으나 끝내 사양하자 명주(현 강릉시) 일대를 봉토로 주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첫째 김종기는 시중을 지내는 등 고위직을 역임했고, 김종기의 아들인 김정여(金貞茹) 또한 명원공(溟原公)으로 책봉되는 등 예우를 받았다. 또 다른 아들인 김장여(金璋如)는 시중을 역임하였다. 김정여의 아들인 김양(金陽) 또한 시중을 역임했으며 신무왕 옹립에 공을 세우고 문성왕 대에 권력을 떨치는 등 권신으로 유명했다. 김장여의 아들이자 김양의 사촌인 김흔(金昕)은 민애왕 대 대장군을 역임했으나 신무왕 옹립 때 사촌 김양과 대립하다 패배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소백산으로 들어가 승려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이후 김종기 계통은 후손이 끊긴다.
둘째 김헌창은 헌덕왕 때 웅주(熊州)에서 난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長安)’이라 하고, 한때 4주 3소경을 점령했으나 한 달 만에 관군에게 패하여 웅주에서 자살하였다. 그 아들 김범문(金梵文)의 난이 연이어 일어났지만 실패하면서 멸족당했고 무열왕계는 6두품으로 강등되었다.
셋째 김신의 아들은 김자사(金紫絲)였고 그 아들은 김동정(金東靖)이었으며 또 그 아들로 김영진(金英珍), 김영길(金英吉), 김영견(金英堅), 김영환(金英喚)의 4형제가 있었는데 이중 김영환을 제외한 3명의 후손이 강릉 김씨를 이어가게 되었다.
김순식(金順式)은 고려 건국 초 명주(溟州)장군으로 끝까지 항거하다 왕건에게 설득을 받고 협력하여 후백제 정벌에 공을 세웠다. 그 후 대광(大匡)에 오르고 왕씨 성을 하사 받았다. 그러나 조선 개국 후 왕씨가 탄압을 받자 원래 성인 김씨로 환원하였다.
강릉 김씨(江陵 金氏) 항렬표
대동 항렬표
世 | 구분 | 항렬 |
33세 | 십이지 (十二支) |
학(學)○ |
34세 | 병(秉)○ | |
35세 | 연(演)○ | |
36세 | ○경(卿) | |
37세 | 진(振)○ | |
38세 | ○기(起) | |
39세 | 남(南)○ | |
40세 | ○래(來) | |
41세 | 동(東)○ | |
42세 | ○유(猷) | |
43세 | 성(成)○ | |
44세 | ○현(玄) | |
45세 | 천간 (天干) |
만(萬)○ |
46세 | ○구(九) | |
47세 | 명(命)○ | |
48세 | ○영(寧) | |
49세 | 무(茂)○ | |
50세 | ○기(紀) | |
51세 | 유(庾)○ | |
52세 | ○재(宰) | |
53세 | 성(聖)○ | |
54세 | ○규(揆) | |
55세 | 오행 (五行) |
종(鐘)○ |
56세 | ○수(洙) | |
57세 | 상(相)○ | |
58세 | ○용(容) | |
59세 | 재(在)○ | |
60세 | ○호(鎬) | |
61세 | 순(淳)○ | |
62세 | ○식(植) | |
63세 | 환(煥)○ | |
64세 | ○희(喜) |
강릉 김씨(江陵 金氏)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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