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황씨(長水 黃氏)
창원 황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17만 명이며 관향은 전락북도 장수군입니다. 장수 황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장수 황씨(長水 黃氏) 역사
시조(始祖) 황경(黃瓊)은 통일신라 말기 시중(侍中)을 역임했다.
장수 황씨세보(長水黃氏世譜)에 따르면 '시조는 경(瓊)이며 신라(新羅)에서 벼슬하여 지위가 시중(侍中)에 이르렀고, 배(配)는 경주 김씨(慶州金氏)니 경순왕(敬順王) 부(溥)의 딸이다'라고 되어 있다.
후일 대제학(大提學)과 영의정(領議政)을 지낸 조인영(趙寅永)도 1831년 운계(雲溪) 황신구(黃信龜)의 비문에 '신라 상주(尙主 = 駙馬) 경(瓊)이 비로소 득성(得姓)하였다'라 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9세손 황공유(黃公有)는 고려 명종 때 전중감(殿中監)을 지내고 무신 이의방(李義方)의 난을 피해 고향인 장수로 돌아왔다가 남원(南原)으로 옮겨 세거하였는데 지금의 광한루(廣寒樓)가 옛 집터이다.
18세손 황석부(黃石富)까지 중간 계대를 고증할 수 없어 황석부(黃石富)를 기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황석부는 조선 세종 때 18년 동안 영의정에 재위한 황희(黃喜)의 증조부로서 사후 호조참의(戶曹參議)로 추증되었다.
영의정 황희가 세종묘에 배향되었다. 황희 정승의 장남 황치신(黃致身)은 우의정에 추증되었고, 셋째 아들 황수신(黃守身)은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으로서 1467년(세조 13년) 영의정에 올랐다.
장수 황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44명을 배출하였다.
분파
호안공파(胡安公派) : 황치신(黃致身)
소윤공파(少尹公派) : 황보신(黃保身)
열성공파(烈成公派) : 황수신(黃守身)
사직공파(司直公派) : 황직신(黃直身)
장수 황씨(長水 黃氏) 항렬표
世 | 항렬 | |
21세 | ○주(周) | |
22세 | 의(義)○ | |
23세 | ○연(淵) | |
24세 | 인(仁)○ | 해(楷)○ |
25세 | ○하(夏) | ○조(照) |
26세 | 규(圭)○ | 요(堯)○ |
27세 | ○상(商) | ○옥(鈺) |
28세 | 영(永)○ | 도(渡)○ |
29세 | ○진(震) | ○극(極) |
30세 | 기(箕)○ | 시(是)○ |
31세 | ○중(重) | ○택(垞) |
32세 | 호(鎬)○ | 현(鉉)○ |
33세 | ○순(淳) | ○천(泉) |
34세 | 만(萬)○ | 동(棟)○ |
35세 | ○섭(燮) | ○욱(昱) |
36세 | 시(時)○ | 은(垠)○ |
37세 | ○석(錫) | ○갑(鉀) |
38세 | 해(海)○ | 재(渽)○ |
39세 | ○식(植) | ○업(業) |
40세 | 병(炳)○ | 지(智)○ |
41세 | ○재(在) | ○원(垣) |
42세 | 용(鎔)○ | 용(鏞)○ |
43세 | ○택(澤) | ○식(湜) |
44세 | 상(相)○ | 주(柱)○ |
45세 | ○렬(烈) | ○석(晳) |
46세 | 기(基)○ | 당(塘)○ |
47세 | ○종(鍾) | ○정(錠) |
48세 | 문(汶)○ | 온(溫)○ |
49세 | ○환(桓) | ○병(柄) |
50세 | 경(炅)○ | 경(景)○ |
장수 황씨(長水 黃氏) 대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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