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부 공씨 항렬표, 역사 알아보기
곡부 공씨 (曲阜 孔氏) 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9만 명으로 본관은 중국 산둥성 취푸시, 경상남도 창원시입니다. 곡부 공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곡부 공씨 (曲阜 孔氏) 역사
공씨(孔氏)의 시조인 문선공(文宣公) 공자(孔子)의 본명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중국 노(魯)나라 추읍(鄒邑 : 曲阜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언행(言行)을 적은 《논어(論語)》가 전한다.
공자의 53세손 공완(孔浣)의 둘째 아들 공소(孔紹)가 원나라의 한림학사로서 1351년(충정왕3) 공민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를 배행하고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여 평장사(平章事)가 되었으며,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창원(昌原)을 사적(賜籍)받음으로써 창원 공씨(昌原 孔氏)의 시조가 되었다.
중시조 공소(孔紹)의 본명은 소(昭)였는데, 이는 고려 제4대 광종(光宗)의 이름과 같아 이를 피하여 소(紹)로 개명하였다.
공소의 손자인 공부(孔俯)는 정몽주, 이색 등과 교유하였으며, 사신으로 명나라에 여섯 번이나 방문하였다. 1416년(태종 16)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파견되었다가 현지에서 사망하였다. 이외에 조선 시대 곡부 공씨 가운데 중요한 족적을 남긴 사람으로 공서린(孔瑞麟)이 있다. 공서린은 중종 대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경기도관찰사와 대사헌을 지냈고, 기묘사화 당시에는 화를 입은 사림 세력을 옹호하다 관직을 삭탈당하기도 하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 창원 공씨(昌原 孔氏)로 세계를 이어오다가 1794년(정조 18)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로 개관(改貫)하였다.
곡부 공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
분파
고려파(高麗派) : 공소(紹)
- 어촌호(漁村戶) : 공부(俯)
- 생원공파(生員公派) : 공석(碩)
- 회안군파(檜安君派) : 공분(賁)
- 주부공파(主簿公派) : 공한수(漢壽)
- 감찰공파(監察公派) : 공극례(克禮)
- 장성파(長城派) : 공명례(明禮)
- 고산호(孤山戶) : 공은(㒚)
- 제학공파(提學公派) : 공화(和)
- 효절공파(孝節公派) : 공종주(宗周)
- 참판공파(參判公派) : 공종주(從周)
- 충민공파(忠愍公派) : 공인주(仁周)
곡부 공씨 (曲阜 孔氏) 항렬표
世 | 항렬 |
74세 | 동(東)○ |
75세 | ○렬(烈) |
76세 | 재(在)○ |
77세 | ○석(錫) |
78세 | 영(泳)○ |
79세 | ○식(植) |
80세 | 병(炳)○ |
81세 | ○배(培) |
82세 | 종(鍾)○ |
83세 | ○호(浩) |
84세 | 권(權)○ |
85세 | ○섭(燮) |
86세 | 규(圭)○ |
87세 | ○용(鎔) |
88세 | 락(洛)○ |
곡부 공씨 (曲阜 孔氏) 문중 사이트 및 자료
곡부 공씨 불광문중회
마무리
곡부 공씨 (曲阜 孔氏)의 항렬표와 역사를 정리해봤습니다. 항렬표를 찾으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나 보완사항 말씀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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