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 주씨(新安 朱氏)
신안 주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15만 명으로 본관은 중국 주자의 관향인 신안(중국의 옛 지명)입니다. 신안 주씨 연관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신안 주씨(新安 朱氏) 역사
유래
동국시조 주잠(朱潛)은 송나라 사람으로 북송(北宋)의 현유 이부공(吏部公) 위재(韋齋) 주송(朱松)의 현손이자 성리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 송태사휘국문공(宋太師徽國文公) 회암(晦菴) 주자(朱子)의 증손이다. 남송 문과 급제 이후 관직은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역임하고 태학사(太學士)와 비서각직학사(祕書閣直學士)에 이르렀다.
주잠은 남송 조정이 점차 간신의 전횡으로 사직이 위태롭게되자 1224년(고려 고종 11년) 공은 가솔과 도성하(陶成河), 두행수(杜行秀), 섭공제(葉公濟), 유응규(劉應奎), 조창(趙昶), 주세현(周世顯), 진조순(陳祖舜) 등 문하의 7학사와 함께 고려로 이동하였다. 고려 고종(高宗)이 궁으로 초빙하여 문하시랑에 제수하고자 하였으나 남송의 신하로서 고려의 관작을 거부하였다.
쿠빌라이(훗날의 원 세조)가 송의 신하들이 고려로 달아난 사실을 알고 그들을 고려 조정에 요구하자 주잠은 화를 피하여 전라도 능성현 죽수부리(竹樹夫里)에 은거하였다.
지금의 인부리(仁夫里), 주자천(朱子川)와 같이 지명이 그 때부터 유래된 곳이 많다. 주잠은 재야에서 성리학 이념을 고려 사회에 전수하고 학문 연구와 유풍 진작 그리고 사림 양성에 진력하였고,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의 주자묘(朱子廟),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의 주천서원(朱川書院)과 청계사(淸溪祠)에 배향되었다.
역사
민휴공(敏休公) 주여경(朱餘慶)은 청계공 주잠의 아들로 남송에서의 이름은 여(餘)였으나 동래 이후 부친과 함께 화를 피하여 은거하던 시절에 여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능성현의 현리를 지내다가 고려 고종~원종 조에 은사과(恩賜科)에 등제하여 성균악정에 올랐으며 좌승상(左丞相)과 밀직부사를 지냈다.
문절공(文節公) 주열(朱悅)은 고려조의 명신이자 명재상으로 민휴공 주여경의 장자이다.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남원판관(南原判官)에 부임하고 국학학록(國學學錄)에 보임되었으며 능성군(綾城君)에 분봉되었고 좌리공신(佐理功臣)과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녹훈되었다. 사후 평장사(平章事)에 증직되었다.
능성군 주열의 세 아들 정숙공(正肅公) 주인장(朱印長), 문간공(文簡公) 주인원(朱印遠), 부사공(府事公) 주인환(朱印還) 역시 관로에 올라 각각 장파, 중파, 계파로 분적되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3명을 배출하였다.
분파
장파, 정숙공파(正肅公派) : 주인장(朱印長)
중파, 문간공파(文簡公派) : 주인원(朱印遠)
계파, 부사공파(府事公派) : 주인환(朱印還)
신안 주씨(新安 朱氏) 항렬표
대동항렬표
世 | 항렬 | |
31세 | 영(寧)○ | 형(炯)○ |
32세 | ○중(中) | ○규(奎) |
33세 | 재(宰)○ | 종(鍾)○ |
34세 | ○돈(暾) | ○하(河) |
35세 | 동(東)○ | 우(尤)○ |
36세 | ○경(㷡)* → ○현(炫) | ○환(煥) |
37세 | 기(基)○ | 지(趾)○ |
38세 | ○호(鎬) | ○전(銓) |
39세 | 영(泳)○ | 낙(洛)○ |
40세 | ○식(植) | ○화(華) |
41세 | 신(愼)○ | 성(性)○ |
42세 | ○곤(坤) | ○균(均) |
43세 | 현(鉉)○ | 용(鎔)○ |
44세 | ○승(承) | ○태(泰) |
45세 | 형(馨)○ | 정(楨)○ |
*주 : 놀라울눈모양 경 字(36세)는 호적에 상용 불가해서 빛날''炫(현)字로 변경됨 ※ 대동보2007정해년 총권
(신안주씨 관련 사이트) 주씨의 후예
신안주씨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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