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엄씨 (寧越 嚴氏)
영월 엄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14만 명으로 본관은 강원도 영월군입니다. 영월 엄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영월 엄씨 (寧越 嚴氏) 역사
엄씨(嚴氏)의 시조인 엄임의(嚴林義)는 중국 한나라 시인 여요(余姚) 사람 엄자릉(嚴子陵)의 후예이며 당나라 상국(相國) 화음(華陰)의 일족(一族)이다.
엄임의(嚴林義)는 당나라 현종(玄宗) 때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보낸 파악사(波樂使)로, 신라에 동래했다가 지금의 강원도 영월 땅인 내성군(奈城郡)에 안주하였다. 호부원외랑(戶部 員外郞)을 지내고 고려조(高麗朝)에서는 내성군(奈城郡)에 추봉되었다.
후손들에게 영월을 식읍(食邑)으로 하사하자, 후손들이 영월(寧越)에 정착하며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고려조에 엄수안(嚴守安)이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 이르렀고, 엄공근(嚴公瑾)은 판전의시사(判典儀寺事) 보문각제학(寶文閣提學)을 역임하였다.
11세 엄유온(嚴有溫)이 조선의 개국공신으로서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역임하였고, 그의 증손녀가 성종의 후궁인 귀인 엄씨이다.
16세 엄흔(嚴昕)이 중종 때 홍문관전한(典翰)을 지냈고, 엄흔의 현손인 엄집(嚴緝)은 숙종 때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렀다.
엄집의 손자 엄숙(嚴璹)이 영조 때 대사헌(大司憲)에 올랐고, 엄숙의 손자 엄도(嚴燾)는 순조 때 대사간(大司諫)을 역임하였다.
25세 엄석정(嚴錫鼎)은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다.
엄진삼(嚴鎭三)의 딸이 고종 후궁 순헌황귀비(純獻皇貴妃)가 되었고, 엄귀비의 아들이 황태자가 된 영친왕(英親王)이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0명을 배출하였다.
분파
군기공파(軍器公派) - 엄태인
복야공파(僕射公派) - 엄덕인
문과공파(文科公派) - 엄처인
영월 엄씨 (寧越 嚴氏) 항렬표
世 | 항렬 | ||
25세 | 석(錫)○ | ||
26세 | ○영(永) | ||
27세 | 주(柱)○ | ||
28세 | ○섭(燮) | ○현(炫) | |
29세 | 재(在)○ | 익(翼)○ | 기(基)○ |
30세 | ○용(鎔) | ○호(鎬) | ○현(鉉) |
31세 | 태(泰)○ | ||
32세 | ○상(相) | ○식(植) | |
33세 | 희(熙)○ | ||
34세 | ○배(培) | ||
35세 | 선(善)○ | ||
36세 | ○수(洙) | ||
37세 | 동(東)○ | 병(柄)○ | |
38세 | ○훈(勳) | ○묵(默) | |
39세 | 규(奎)○ | ||
40세 | ○강(鋼) | ○현(鉉) | |
41세 | 낙(洛)○ | ||
42세 | ○표(杓) | ||
43세 | 환(煥)○ | ||
44세 | ○준(埈) | ||
45세 | 일(鎰)○ |
영월 엄씨 (寧越 嚴氏) 대종회
마무리
영월 엄씨의 항렬표와 역사를 정리해봤습니다. 항렬표를 찾으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나 보완사항 말씀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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