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임씨 항렬표, 역사 알아보기
예천 임씨(醴泉 林氏)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6만 명으로 본관은 경상북도 예천군입니다. 예천 임씨 관련 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예천 임씨(醴泉 林氏) 역사
기원
나주임씨를 제외한 평택임씨 등 나머지 임씨의 원시조는 중국 사람 임팔급이다. 그가 당나라 때 간신의 모함을 피해 7명의 학사와 함께 바다를 건너 지금의 평택 땅에 정착한다.
그 뒤 임팔급의 후손 임몽주의 아홉 아들 대에서 여러 본관으로 갈라진다. 그 중 임계미의 후손에서 임춘(林椿)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임춘은 고려 의종 때의 대표적 문인으로 고려 때 좌의정을 지낸 임광비의 아들이다. 6세 때부터 글을 깨우쳤던 임 춘은 성리종회(性理宗會), 삼재상수(三才象數) 등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다.
당시 정중부에 의해 많은 문관들이 죽음을 당할 때 임춘의 대부터 경상북도 예천 땅으로 화를 피해 정착하였고 도학을 가르쳤다.
임춘은 고려 의종 때 서하처사로 일컬어졌으며 이인로(李仁老), 오세재(吳世才) 등과 함께 강좌 7현의 한 사람으로서 한문과 당시(唐詩)에 뛰어났다.
역사
예천 임씨의 시조 임충세(林忠世)는 고려 때 이부상서를 지냈으며, 임춘의 큰 아들이다. 그 후손들이 예천을 본관으로 삼아 예천임씨가 시작된다.
임충세의 둘째 아들 임익은 도순무어사를 지냈다.
임익의 아들 임천봉 등은 모두 예천임씨를 이어간다. 한편 임천봉의 둘째 아들 임연은 고려 충숙왕 때 공신이 되어 순창군에 봉해져 순창임씨의 관조가 된다.
임윤덕은 고려 공민왕 때 벼슬을 지내다 조선이 개국되자 부여에 은거한다. 그러나 그의 둘째 아들 임수는 조선조에서 벼슬을 지낸다.
임유문(有文)은 임 개의 아들로 숙종 때 요나라, 예종 때 송나라를 다녀오고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지냈다. 임경한(林景翰)은 순조 때 서예의 대가로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예천 임씨(醴泉 林氏) 항렬표
대동 항렬표
예천 임씨(醴泉 林氏) 사이트 및 자료
예천 임씨 정보 카페
마무리
예천 임씨의 항렬표와 역사를 정리해봤습니다. 항렬표를 찾으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나 보완사항 말씀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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