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김씨(淸道 金氏)
청도 김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9만 명으로 본관은 경상북도 청도군입니다. 청도 김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청도 김씨(淸道 金氏) 역사
청도 김씨의 시조 김지대(金之岱, 1190년 ~ 1266년)는 경순왕의 후손으로, 초명이 김중룡(金仲龍)이다. 아버지는 고려 때 시중(侍中, 종1품)을 지낸 김여흥(金余興)이다.
고려 고종과 원종대(元宗代)의 명신(名臣)으로 1218년(고종 5) 거란족이 쳐들어 왔을 때 29세의 나이로 군문에 입영하여, 원수(元帥) 조충을 따라 출정했다. 당시 병사들은 방패머리에 기이한 그림을 그려넣곤 했는데 그는 충효쌍수(忠孝雙修)라는 순두시(楯頭詩)를 써넣고 전투에 임하였으며, 큰 공을 세우고 이듬해 3월에 개선(凱旋)했다.
이듬해 1218년 문과에 장원급제해 전주사록(全州司錄)의 보임(補任)을 받았다. 이어 보문각교감(寶文閣校勘)에 제배(除拜)되었으며, 그 후 진주목사(晉州牧使)를 했다. 1240년(고종27)에 전라도안찰사에 임명되었으며, 1243년(고종 30) 비서소감(秘書少監,종4품,비서성에 소속된 관직으로 비서감 다음의 고위관직)으로 몽고를 방문하는 사신의 임무를 수행했고, 1247년(고종 34) 경상도안찰사(慶尙道按察使), 1255년(고종 42) 판사재감사(判司宰監事,정3품)로 과거시험의 동지공거(同知貢擧)를 역임했으며, 1258년(고종 45) 북변에 몽고군이 침입하자 첨서추밀원사(簽書樞密院事,정3품)로 승진하여 북계지병마사(北界知兵馬使)를 겸직, 몽고군을 격퇴하고 민심을 잘 다스려 서북 40여 성을 안정시킨 공훈으로 오산(鰲山:청도의 옛 이름)군(君)에 책봉되었다.
원종(고려)이 즉위한 1260년 12월에 정당문학(政堂文學,종2품),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시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1261년(원종 2)에 수태부중서시랑평장사(守太傅中書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오산군(鰲山君: 鰲山은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에 봉해지고 영헌공(英憲公)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청도(淸道)를 관향(貫鄕)으로 삼아 그곳에 살면서 고려와 조선조에 결쳐 명문(名門)으로 명성을 떨쳤다.
분파
청도 김씨(淸道 金氏) 항렬표
항렬표 (청도 김씨 홈페이지)
청도 김씨(淸道 金氏) 문중 사이트
청도 김씨 홈페이지
마무리
청도 김씨의 항렬표와 역사를 정리해봤습니다. 항렬표를 찾으시는 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틀린 부분이나 보완사항 말씀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구독, 그리고 댓글은
저의 블로그 활동에
큰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