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임씨(平澤 林氏)
평택임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약 22만 명으로 전체 본관별 인구수 41위입니다. 평택임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평택 임씨(平澤 林氏) 역사
시조인 임팔급의 먼 조상은 은나라 주왕 시절의 충신, 비간으로, 그가 충언을 한 후 조카인 주왕에게 잔혹에게 살해당한 후, 그의 아내인 진씨(陳氏)는 안양 인근으로 도피하는 가운데 장림산(長林山)에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천(泉)으로 지어주었으며, 이후 주나라 무왕이 비간의 아들에게 임씨(林)성과 견(堅)이라는 이름을 사하였다.
이후 임견의 후손인 임팔급이, 당나라에서 18세에 등과하여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거쳐 병부시랑(兵部侍郎) 예부상서(禮部尙書)로 있었으나, 간신의 모함을 받고 당시 신라로 망명을 하였으며, 적국이 침입하였을 때, 이를 막아낸 공로로 팽성군(彭城君)에 봉해진 후, 신덕왕 때에 충절공이라는 호를 얻게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말 각각 연희궁부사와 평성부원군을 역임한 임세춘(林世春)이 시조인 전객령계(典客令系)와 임언수(林彦脩)가 시조인 충정공계(忠貞公系)가 있다. 조선시대 땐 문과 급제자가 20명 정도 있었다.
전객령계
기세조 임세춘(林世春)이 고려 말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 겸 연희궁부사(延禧宮副使)를 지냈다. 그의 증손 임정(林整)은 조선 태종조에 형조 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공혜(恭惠)이다. 혹칭 평성 임씨(平城 林氏)라 한다. 평성(平城)은 평택(平澤)의 별호이다.
임정(林整)의 7대손인 임경업(林慶業)은 1624년(인조 1)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에 녹훈되고 정묘호란 이후 친명배청(親明排淸) 무장(武將)으로 활약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충정공계
기세조 임언수(林彦修)는 아들인 임견미(林堅味)가 고려 말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오르는 등 귀한 신분이 되자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으로 봉해졌다. 혹칭 팽성 임씨(彭城 林氏)라고도 한다.
임견미의 형인 임성미(林成味)의 6세손 임형수(林亨秀)는 1535년(중종 30) 문과에 급제하여 부제학에 올랐으나,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파직되었다.
평택 임씨(平澤 林氏) 항렬표
전객령계(典客令系)
世 | 항렬 | |
21세 | 순(淳)○ | |
22세 | ○식(植) | |
23세 | 병(炳)○ | 희(熙)○ |
24세 | ○규(奎) | ○규(圭) |
25세 | 종(鍾)○ | 석(錫)○ |
26세 | ○호(浩) | ○수(洙) |
27세 | 동(東)○ | 상(相)○ |
28세 | ○섭(燮) | ○열(烈) |
29세 | 배(培)○ | 경(坰)○ |
30세 | ○진(鎭) | ○호(鎬) |
31세 | 태(泰)○ | 철(澈)○ |
32세 | ○모(模) | ○근(根) |
33세 | 형(炯)○ | 경(炅)○ |
충정공계(忠貞公系)
世 | 항렬 | |
16세 | 원(遠) | |
17세 | 영(永) | |
18세 | 상(相) | |
19세 | 노(魯) | |
20세 | 주(周) | |
21세 | ○호(鎬) | ○석(錫) |
22세 | 한(漢)○ | 승(承)○ |
23세 | 동(東)○ | |
24세 | ○묵(默) | ○환(煥) |
25세 | 재(在)○ | |
26세 | ○진(鎭) | |
27세 | 태(泰)○ | |
28세 | ○락(樂) | |
29세 | 훈(勳)○ | |
30세 | ○시(時) | |
31세 | 선(善)○ | |
32세 | ○원(源) | |
33세 | 계(桂)○ | |
34세 | ○병(炳) | |
35세 | 규(圭)○ | |
36세 | ○종(鍾) |
평택 임씨 대종회 (전객령공계)
평택 임씨 향선재 대종회 (충정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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