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 조씨
풍양 조씨(趙氏)의 역사와 표준 항렬표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동음인 창녕 조씨(曺氏)와 별개의 성씨입니다.
목차
풍양 조씨(豐壤 趙氏) 역사
조맹은 후삼국시대 신라 풍양현에서 태어나,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서 난세를 피하고 있었다. 당시 후고구려 군을 이끌고 후백제와 전쟁 중이던 왕건이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쳤다. 영해 지방에서야 한숨돌린 왕건은 군사회의를 열었다. 그러자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도사'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을 듣고 직접 찾아가 책사로 삼았다고 한다. 마침내 고려가 건국되자 태조 왕건에게 왕명으로 조(趙)라는 성과 맹(孟)이란 이름을 하사받고 삼한개국공신 3등에 이름을 올린다.
남양주시 천마산에는 조맹이 왕건과 만났다고 전해지는 현성암(見聖庵)이라는 유적이 있고, 조맹이 홀로 마셨다는 우물[獨井] 인근은 '독정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에 있었던 세도정치로 유명하다. 풍양 조씨는 안동 김씨가 모든 것을 장악했던 당시,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만영과 그 아우인 조인영을 중심으로 세를 일으켰다. 조인영은 영의정에 올랐으며 세도 정치의 근간이 되는 외척 자리를 놓고 안동 김씨와 격돌한 풍양 조씨는 효명세자가 요절하자 안동 김씨에게 밀리게 된다. 그러나 이후 헌종(조선), 철종(조선) 등이 하나같이 대를 잇지 못하면서 조 대비가 흥선대원군의 아들 익성군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대통을 잇게 한다. 풍양 조씨는 흥선대원군, 여흥 민씨 등과 손잡고 안동 김씨를 밀어내는 데 마침내 성공한다.
풍양 조씨(豐壤 趙氏) 항렬표
世 | 전직공계 (殿直公系) |
평장사공파 (平章事公派) |
상장군공파 (上將軍公派) |
17세 | 만(萬)◯ | ||
18세 | ◯년(年) | ||
19세 | 희(熙)◯ | ||
20세 | ◯재(載) | ||
21세 | 돈(敦)◯ | ||
22세 | ◯묵(默) | ||
23세 | 병(柄)◯ | ||
24세 | 동(東)◯ | ◯기(紀) | 갑(岬)◯ |
25세 | ◯구(九) | 강(康)◯ | ◯일(日) |
26세 | 남(南)◯ | ◯규(揆) | 병(昺)◯ |
27세 | ◯연(衍) | 연(演)◯ | ◯종(宗) |
28세 | 성(誠)◯ | ◯행(行) | 성(晟)◯ |
29세 | ◯희(熙) | 진(振)◯ | ◯기(玘) |
30세 | 용(鏞)◯ | ◯동(東) | 강(慷)◯ |
31세 | ◯신(新) | 순(淳)◯ | ◯상(庠) |
32세 | 중(重)◯ | ◯경(卿) | 성(聖)◯ |
33세 | ◯규(揆) | 기(祺)◯ | ◯채(蔡) |
34세 | 용(用)◯ | ◯성(成) | 진(陳)◯ |
35세 | ◯원(元) | 창(彰)◯ | ◯건(乾) |
36세 | 상(商)◯ | ◯중(重) | 천(遷)◯ |
37세 | ◯형(衡) | 연(縯)◯ | ◯정(正) |
38세 | 무(茂)◯ | ◯직(稙) | 무(武)◯ |
39세 | ◯범(範) | 범(範)◯ | ◯회(回) |
40세 | 강(康)◯ | ◯용(鏞) | 용(庸)◯ |
41세 | ◯재(宰) | 승(承)◯ | ◯신(薪) |
42세 | 종(鍾)◯ | ◯욱(旭) | 영(郢)◯ |
43세 | ◯주(湊) | 영(寧)◯ | ◯규(葵) |
44세 | ◯무(茂) | ||
45세 | 재(宰)◯ | ||
46세 | ◯정(程) | ||
47세 | 태(兌)◯ | ||
48세 | ◯우(宇) | ||
49세 | 건(建)◯ | ||
50세 | ◯보(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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