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씨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오래된 성씨 중 하나인 경주 이씨는 2015년 통계 기준 인구수 약 139만 명으로 전체 5위에 해당됩니다. 경주 이씨 문중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한 역사와 항렬표를 정리했습니다.
목차
경주 이씨 (慶州 李氏) 역사
시조와 진한(辰韓) 6촌
경주이씨의 시조(始祖)는 이알평(李謁平)이고 본관(本貫)은 경주(慶州)이다.
『삼국유사』에는 기원전 117년에, 경주이씨의 시조인 <알평공>이 하늘에서 신라의 4영산(靈山)의 하나인 경주 동북에 있는 금오산(金鰲山)의 표암봉(瓢巖峰)에 내려왔다고 한다.
신라 6촌(村)은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취산진지촌(嘴山珍支村)·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다.
『삼국사기』에는 유리왕(儒理王) 9년 봄에 6부(部)의 이름을 아래와 같이 고쳤는데,
양산부(楊山部)→밑돌부(及梁部) 이씨(李氏)
고허부(高墟部)→새돌부(沙梁部) 최씨(崔氏)
대수부(大樹部)→점돌부(漸梁部) 손씨(孫氏)
우진부(于珍部)→본피부(本彼部) 정씨(鄭氏)
가리부(加利部)→한기부(漢祇部) 배씨(裵氏)
명활부(明活部)→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
『삼국유사』에는 이와 달리 새돌부(沙梁部)를 정씨(鄭氏)의 본관으로 기록하고 있다.
시조의 영지(領地)인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은 뒤에 밑돌부(及梁部)가 되는 뿌리의 마을로 6촌의 모체이고 밑돌부의 촌장인 이알평(李謁平)은 6촌의 부족사회를 영도하는 수장이었다.
계대(系代)와 분파(分派)
시조 이후 신라 말의 거명(居明) 전까지는 계대(系代)가 자세하지 않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이제현(李齊賢)의 묘지(墓誌)를 지으면서 신라말에 소판(蘇判)에 이른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세계(世系)를 자세하게 적은 것이 계기가 되어 소판공(蘇判公)을 중시조(中始祖) 곧 기세조(起世祖)로 모시고 있다.
경주이씨에서 분적(分籍)한 합천이씨(陜川李氏)의 계보(系譜)에는 알평 이후의 계차(系次)가 명시되어있고 또 경주이씨 문중(門中)의 어떤 이가 수백 년 전에 계보를 발견했노라고 제시한 것이 있으나 선대 때부터 대종보(大宗譜)의 총편(總編)의 말미에 참고 자료로 제시해 놓았을 뿐 정식 계대로 채택하지는 않고 있다.
경주이씨 분적종(分籍宗)은 알평의 후손 가운데 양식(陽植)을 시조로 하는 우계이씨(羽溪李氏)·위(渭)를 시조로 하는 차성이씨(車城李氏)·개(開)를 시조로 하는 합천이씨·거명의 6세인 주좌(周佐)를 시조로 하는 아산이씨(牙山李氏)·주복의 아들 우칭을 시조로 하는 재령이씨(載寧李氏)·거명의 17세인 조()의 아들 영재(永梓)와 군재(君梓)를 시조로 하는 진주이씨(晉州李氏)·거명의 23세 반계(攀桂)를 시조로 하는 원주이씨(原州李氏) 등으로 분적되었다.
우리나라의 이씨(李氏)는 중국에서 귀화해 온 몇몇 본(本)의 이씨를 제외하면 거의 이알평(李謁平)의 후손에서 파생(派生)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중시조(中始祖) 거명(居明)으로부터 분파하여 14개 대종파로 나뉘어 있다.
원 간섭기에 문하평리 증 상서좌복야 열헌공(悅軒公) 이핵(李翮)의 집안이 크게 번성하기 시작하였으며 그의 자손들로부터 경주 이씨 8대파가 나왔다.
- 평리성암공파(評理誠菴公派) : 이인정(李仁挺)
- 이암공파(怡庵公派) : 이관(李琯)
- 익재공파(益齋公派), 이제현(李齊賢)
- 호군공파(護軍公派) 이지정(李之正)
- 국당공파(菊堂公派) 이천(李蒨)
- 부정공파(副正公派) 이매(李邁)
- 상서공파(尙書公派) 이과(李薖)
- 사인공파(舍人公派) 이조(李蓨)
분적도
화백 제도
『삼국유사』에는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기원전 69년) 3월 1일 6촌의 촌장들이 각기 그의 자제(子弟)들을 이끌고 경주이씨의 시조인 알평공(謁平公)이 다스리는 알천(閼川)의 안상(岸上)에 모여 나라를 세울 것을 의논하였다고 한다.
13세된 혁거세(赫居世)에게 ‘박(朴)’의 성을 주어 기원전 57년에 왕으로 추대하니 이분이 박혁거세(朴赫居世)이다. 그런데 이 때에 6촌민들이 회의를 하면서 준수해 오던 ‘논의와 결의의 방법’ 이 바로 ≪화백(和白)≫이라는 것이다.
이 ≪화백≫제도는 신라 후대에 전통화 된 관례인데, 중국에까지 소문이 나서 저들의 사서(史書)에도 간략한 기록이 보인다. 『수서(隋書)』신라전(新羅傳)에는 “共有大事 則聚群官 詳議完之” (공공의 큰 일에는 많은 관리들을 모아놓고 자상하게 의논하여 완결짓는다.)고 있고『당서(唐書)』신라전에는 “事必與衆議 號和白 一人異則罷” (일은 반드시 많은 사람과 더불어 의논하는데 ‘화백(和白)’ 이라고 부른다. (논의하다가도) 한 사람이 의견을 달리하면 그만둔다.)고 있다.
이 ≪화백제도(和白制度)≫는 기록으로는 기원전 69년의 알천 안상의 6촌회의에서 유래했는데, 어떤 이는 이 화백제도를 민주주의의 발상(發祥)이라고 하였으나 민주주의의 발상이라기 보다는 완성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철칙(鐵則)이 있다.
그러나 ≪화백≫은 100명이 지지하더라도 1명이 반대하면 그 안건을 아예 폐기해버리는 것이니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참석인원 전원의 지지 없이는 가결하지 않는다는 철칙―이것이 ≪화백≫이다. 참석인원 전원의 지지로 결의하였으니 책임도 또한 전원이 질 것 아닌가?
신라가 992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누린 배경에는 이와 같은 ≪화백의 철칙≫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6촌이 단순한 원시부족사회가 아니라 이미 “민주주의가 완성된 사회” 이기 때문에 화백제도와 같은 고도의 도덕사회가 탄생하고 또 준용(遵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으로는 기원전 69년의 사로국 <건국회의>에서도 “아이들이 버릇이 없고 방자하니 덕이 있는 이를 찾아서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우자”는 민주적 건국논의에서도 충분히 감지되는 일이다.
경주 이씨 (慶州 李氏) 항렬표
경주이씨의 항렬(行列)은 34세(世)까지는 익재공후 재사당공파, 국당공후 문정공파, 국당공후 정순공파, 상서공파(정헌공파 등) 4집안에서 각기 따로 정하여 사용하였고 35~70세까지는 고종 때의 영의정이었던 귤산공(橘山公) 유원(裕元)이 제정하였다.
익재공파, 상서공파 항렬표 [ ~34世 ]
世 | 익재공파 | 상서공파 |
(재사당공파) | ||
22세 | ||
23세 | ○신(臣) | |
24세 | 몽(夢)○ | |
25세 | ○從水 | ○복(福) |
26세 | ○윤(胤) | ○남(男) |
27세 | 대(大)○ | 시(時)○ |
28세 | 시(時)○ | 세(世)○ |
29세 | 경(慶)○ | ○좌(佐) |
30세 | 인(寅)○ | 종(宗)○ |
31세 | ○곤(坤) | 경(敬)○ |
32세 | ○석(錫) | ○규(奎) |
33세 | ○원(源) | 계(啓)○ |
34세 | 집(集)○ | 유(裕)○ |
※ 從木, 從火, 從土, 從金, 從水, 從鳥, 從玉은 각각 木, 火, 土, 金, 水, 鳥, 玉이 들어간 한자를 의미함
국당공파 항렬표 [ ~34世 ]
世 | 국당공파 | |
(문정공파) | (정순공파) | |
22세 | 자(自)○ | |
23세 | ○從鳥 | |
24세 | ○일(一) | |
25세 | ○從水 | |
26세 | 인(仁)○ | |
27세 | ○從水 | ○從火 |
28세 | 경(慶)○ | 중(重)○ |
29세 | ○從火 | ○從玉 |
30세 | ○기(基) | ○한(漢) |
31세 | ○從金 | ○從木 |
32세 | ○만(萬) | ○용(容) |
33세 | ○從木 | ○從土 |
34세 | 현(顯)○ | ○흠(欽) |
※ 從木, 從火, 從土, 從金, 從水, 從鳥, 從玉은 각각 木, 火, 土, 金, 水, 鳥, 玉이 들어간 한자를 의미함
대동항렬표 [ 35~70世 ]
1868년, 익재공파, 국당공파, 상서공파 등 문중 사람들이 모여 경주이씨 화수회를 설립하고 진천 문중에서 사용하는 항렬자를 기준으로 대동항렬을 정했습니다.
世 | 대동 항렬 |
35세 | ○영(榮) |
36세 | 규(圭)○ |
37세 | 종(鍾)○ |
38세 | ○우(雨) |
39세 | 상(相)○ |
40세 | ○희(熙), ○형(炯) |
41세 | 재(在)○ |
42세 | ○호(鎬), ○건(鍵) |
43세 | 제(濟)○, 준(濬)○ |
44세 | ○동(東) |
45세 | 병(丙)○, 심(心)○ |
46세 | ○교(敎), ○세(世) |
47세 | 진(鎭)○ |
48세 | ○구(求) |
49세 | 근(根)○ |
50세 | ○섭(燮) |
51세 | 준(埈)○ |
52세 | ○선(善) |
53세 | 태(泰)○ |
54세 | ○모(模) |
55세 | 현(炫)○ |
56세 | ○균(均) |
57세 | 용(鎔)○ |
58세 | ○순(淳) |
59세 | 병(秉)○ |
60세 | ○炅(경), ○杰(걸) |
61세 | 基(기)○ |
62세 | ○鈺(옥) |
63세 | 洛(낙)○, 永(영)○ |
64세 | ○植(식) |
65세 | 德(덕)○ |
66세 | ○周(주), ○起(기) |
67세 | 鏞(용)○, 鎰(일)○ |
68세 | ○浩(호), ○洙(수) |
69세 | 柱(주)○, 綵(채)○ |
70세 | ○熏(훈), ○燁(엽) |
경주이씨 중앙 화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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